시선을 통하여

내 여자의 열매-한 강

ojhskhk0627 2007. 9. 3. 00:22

 

 

                                                   3

 

아내에게 원래 눈물이 많았던가? 그렇지 않았다. 상계동아파트에 사는 건 싫어,라고 말하며

처음 눈물을 흘렸을 때 아내는 스물여섯살이었다. 처�적의 아내는 웃음이 많았고, 목소리에도 언제나

나직한 웃음의 기운이 밝은 배경색처럼 깔려 있었다. 동안 인 데 비하여 어른스럽고 차분한 그 목소리를

처음으로 떨며 아내는 말했었다.

인구 칠십만이 모여 산다는 거기서 천천히 말라죽을 것 같아.

수백 수천 동 똑같은 건물에,칸칸마다 똑같은 주방에,똑같은 천장에, 똑같은 변기,욕조,베란다,엘리베이터도 싫어. 공원도,놀이터도,상가도,횡단보도도 다 싫어.

왜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그래.

이야기의 내용보다는 그 목소리의 부드러움에만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나는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말했었다.  살아보지도 않고서 왜 그런 말을 해.사람이 많다는 게 왜 싫다는 거야.

나는 약간 정색한 얼굴로 아내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선한 눈이었다

일부러라도 나는 번화가가 가가운 곳에서만 자취방을 얻곤 했어.인파가 득시글거리고, 시끄러운 음악이 거리를 꽝꽝 울리고, 혼잡하게 도로를 메운 차들이 경적을 뱉어대는 곳으로만 옮겨 다녔어.

그러지 않고서는 배겨낼 수가 없었어

그 선한 눈에서 거짓말 같은 눈물이 굴러떨어졌다.

그러지 않고는 버텨낼 수 없었다구.

아내는 그 눈물을 손바닥으로 닦더니,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세수하듯 두 뺨에 거푸 문질렀다.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갈 것 같단 말이야. 그 십삼층에서 내려오지 못할 것 같단 말이야.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단 말이야.

왜 그렇게 끔직한 소리를 해. 별나기도 하구나. 정말.

이곳 상계동 아파트에 집을 얻어 살기 시작한 첫해에 아내는 과연 잔병을 앓았다.산동네 자취방의 추위에 익숙해 있던 아내는 밀폐된 아파트의 중앙난방에 적응하지 못했다.가파른 비탈길을 잰걸음으로

오르내리며 출판사를 개근하느라 최대한으로 단련되어 있었던 그녀의 몸은 쉽사리 원기를 잃었다.

그러나 아내가 직장을 그만둔 것은 결혼 때문은 아니었다.내가 구체적 결혼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내가 직장을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아내는 그공안 저축했던 월급과 퇴직금.그리고

주말에 두어 건의 아르바이트를 뛰어 모아둔 돈을 죄다 털어서 이 나라를 떠날 생각을 해오던 참이었다

 

떠나서 피를 갈고 싶어,라고 아내는 말했었다. 줄곧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사직서를 마침내 직속상사에게 올렸다던 날  저녁이었다.혈관 구석구석에 낭종처럼 뭉쳐 있는 나쁜 피를 갈아내고 싶다고, 자유로운 공기로 낡은 폐를 씻고 싶다고 아내는 말했다.자유롭게 살다가 자유롭게 죽는 것이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다고.여건이 되지 않아 줄곧 미루어만 왔지만 이제 얼마간의 돈을 모았으며 자신감도 생겼으므로

그것을 실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일단 떠나서 육개월쯤 한 나라에 머물다가 다른 나라로 떠나고,그곳에서 다시 몇달을 머무르다가 또 다른 나라로 떠날 것이라고 했다.

죽기전에 말이야,라고 아내는 말하며 나직하게 웃었다.

그렇게 세상끝까지 가보고 싶어.가장 먼 곳으로,지구 반대편까지 쉬엄쉬엄.

그러나 세상의끝으로 떠나버리는 대신 아내는 그 얼마 안되는  자금을 이 아파트의 전세금과 결혼비용에

털어부었다."아무래도 헤어질 수가 없어서" 짤막한 한마디로 아내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했다.

아내가 꿈꿔왔다는 자유라는 것은 얼마만큼의 실제적인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그다지 대단한 것은 아니었으리라고 나는 짐작했다. 그것을

위해 그녀가 세웠던 계획이라는 것들 역시 어린아이 같은 것.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몽상이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그 점을 아내가 뒤늦게 깨달은 것이며, 그 깨달음은  어쩌면 나로 인한 것이었으리라는

자부심 섞인 추측에 이르렀을 때 나는 일말의 감동을 느꼈다.

그러나 몸이 자주 아픈 탓이었겠지만, 좁은 어깨를 시든 배춧잎처럼 늘어뜨린 채 베란다 유리문에 뺨을

붙이고 서서 질주하는 차들의 모습을 내려다 보고 있는 아내를 보면  가슴이 내려앉곤 했다.

마치 누군가의 투명한 팔이 아내의 어깨를 결박하고 있는듯이. 보이지 않는 사슬과 묵직한 철구가 발과

다리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처럼.그녀는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은 채 거기 서 있었다.

깊은 밤과 새벽이면 한산한 도로를 과속으로 질주하는 택시며 오토바이들의 굉음에 아내는 깜짝깜짝

깨어 몸을 떨곤 했다.차들이 아니라 도로가 달리고 있는 것 같다고. 도로와 함께 이 집도 어디론가

떠내려가고 있는 것 같다고 아내는 말했다. 굉음이 멀리 사라진 뒤에야 다시 혼곤한 잠에 빠져드는 아내의 귀염성있는 얼굴은 산 사람 같지 않게 창백했다.

저것들. 다 어디서 왔을까.

그러던 어느날인가,들릴 듯 말 듯한 쉰 목소리로 아내는 꿈결처럼 물은 적이 있다.

...... 다들 어디로 저렇게 달려가는 거야?

 

-------------------------------------------------------------------------------

 

한강의 첫 소설집을 읽은 후 10년을 훨씬 지나 다른 소설집을 읽었다.

첫 소설에서도 20대 중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상하고 메마른 영혼을 가졌었다.

그 때도 단 숨에 읽어제치고는 오랫동안 주저앉아  "그러지마" 중얼거렸었다.

그 이후로 그녀를 잊었었다. 세월에 적당한 더께같은 것들과 능청함이,각진 모서리들이

깍여나가 희미한 웃음이라도 지을 줄 알았다.그녀의 팽팽한 신경줄이 여전히 살아있으리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었다.나는 그녀에게 또 한번 같은 이야기를 건넨다.

"그러지마. 네 잘못이 아냐. 그 어떤 것도 네 잘못이 아니야.그러니 평안하도록 그냥 나둬"

 

한 개인이 사회적구조가 옳든, 옳지 않든  그 구조 밖에서 외딴 방을 가지고 힘겨운채로 살아간다는 일은 외롭고 서러운 일이다.한강이 갖고있는 소재와 주제는 더 이상 기댈 곳 없는 낮고 낮은 이들의 기록이다.

그 것은 어떤 희망으로도 채울 수없는 주저앉음의 자리에서부터 시작한다.

건강하다는 의미는 자신으로부터 자신이지 못하게 하는 대상에 대한  싸움을 할 수있는 육체적,정신적

힘이 남아있다는 의미일 것이다.그 모든 것을 상실하거나, 버려버린 자들에게서는 그러한 전투의지가

없다.어쩌면 싸울 이유를 찾지못하거나 그 대상에 대한 경멸이 희망을 거두어가는지도 모를일이다.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외수의 초기작중에 하나인 '꿈꾸는 식물"과 한강의 소설들이 비교되고는 한다.둘 다 약육강식의 동물의세계인 세상에 대해 가녀리고 힘없는 풀들이 그 동물의

세계에서 어쩔 수 없이 자리 잡은 생의 혼돈 같은 같은 것은 아닐까라는.

이외수가 퍼퓰러즘에 의해 소설이 작동되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 그 반대편에서 한강은 그야말로

그냥 "서"있는 채로 멍하니 바라보는 순수함이 느껴지는 것은 둘 사이에 있는 세월의 간극 때문일까.

 

그녀는 여전히 그녀의 자리를 박차고 나 올 의지가 없는 모양이다.

여전히 바라보고만 있는 듯하다.아니면 여전히 다른 출구를 모색하고, 탈출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

 

                                      4

 

 

[그러는 나를 보며 아내는 말했었다.

 차라리 우리 먼 데로 가. 우리

 잎사귀 가득 기운찬 빗줄기를 받아들이며 잠시나마 우쭐우쭐 되살아나는 채소들과는 달리 아내는

 음울하게 시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서는 답답해서 살 수가 없어.콧물도 가래침도 새까매.

 아내는 상춧잎 위로 여린 손바닥을 내밀어 비를 받았다가 이내 베란다 밖으로 뿌렸다.

 더러운 비야.

아내는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잠깐 살아나는 것처럼 보일 뿐이야.

마치"이 나라는 죄다 썩었어!"라고 술좌석에서 외치는 사람처럼 적의에 찬 목소리로 아내는 내뱉었다.

잘 자랄리가 없잖아.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서......이렇게 답답한 곳에 저희들끼리 갇혀서!

그때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고 느꼈다.

뭐가 답답하다는 거야?

내 짧고 아슬아슬한 행복을 함부로 깨뜨리는 아내의 예민함을,자신이 말한 대로 낡은 우울질의 피가

흐르는 그녀의 깡마른 몸뚱이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말을 해봐 ]

 

 

-------------------------------------------------------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서......

이렇게 답답한 곳에서  잘 자랄리가 없잖아.

알아. 알것 같아.

그렇다고해도 갈 수 있는 곳은 없어.내가 아는 한 없어

여기서 죽든 살든 뿌리내리고 살아야 해.튼튼한 뿌리로.

 

 

                                                   

 

 

'시선을 통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산  (0) 2007.10.24
하루끼에 관하여  (0) 2007.09.16
Haris Alexiou  (0) 2007.07.05
흐르는 것들 - Fariborz lachini  (0) 2007.07.05
savina yannatou  (0) 2007.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