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에를 듣는아침-트럼펫 소나타중 렌토 돌체
최민식의 세계는 정직하다.
최민식은 그 어떤 수사나,치장도 없이 담백하게 렌즈를 들이댄다.
그의 렌즈는 사람에 관한, 사람의 세월에 관한,사람의 상처나 아픔에 관한
기록이며,스스로의 일기이기도 하다. 피사체에서 느끼는 아픔과 연민을 참아가며
가장 낮고 낮은자들을 기록한다. 1970년대와1980초의 그의 기록물이다.
위의 컷들은 최민식이고 밑의 컷들은 홍순태이다.
1928년 생의 최민식과 1934년 생의 홍순태는 동시대를 살았으나,
다른 시선으로 세계를 이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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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창밖을 보니 모과나무가 어느새 쭉 자라있었다.
그 밑의 목단도 활짝 피었다.몇 년 전 이사올때 아들 나무로 감나무를 심었고 딸내미
나무는 앵두나무,그리고 집사람은 넝쿨장미, 내 나무는 모과를 심었었다.
어찌된일인지 감나무와 넝툴장미는 2년을 채 못 살고 죽었고 딸의 앵두나무는
몇 차례 신기해 하면서 앵두를 따먹었다. 나 처럼 못 생긴 모과나무는 영 클것 같지 않더니
올해는 기특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커오고 있으니 고맙다.
이사오기 전부터 대추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재 작년인가 시름시름 앓더니
마르기 시작해 푸른 잎을 피우지 않아 베어 낸 적이 있다.후회를 많이 하고 있다.
그렇게 죽은 것들은 사랑받지 못한 까닭이리라.
마르고 버짐 피는 동안,그렇게 아파하는 동안 아무도 인사를 건네지 않았으며,
스스로 몸부림칠 동안 눈 마주치는 이 하나 없었으니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마음을 먹었겠지.
그 동안 개도 세번째 바뀌었다.
첫번째는 목에 딸랑소리를 내는 것을 걸어주어 이름이 딸랑이었고,두번째는 머리가 검었던 흑두
지금의 개 이름은 망치다. 첫번재 딸랑이는 장염으로 검은피를 쏟으며 죽어 갔다.
죽어가는 딸랑이를 결국 몇 만원을 주고 안락사 시키기에 이르렀는데 사람의 죽음과 개의 죽음이
다르지 않으며, 그렇게 헐떡이며 짧은 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알았다.
흑두는 태생이 예사롭지 않은 놈이었다. 흑두의 엄마는 흑두의 남편이 바람펴서 낳은 개 사이에서,
흑두를 낳았으니 얼키고 설킨 그들의 관계속에서 외롭고 조용한 놈이었다.
세마리중에서 가장 똑똑했으나,조용해서 사랑을 듬뿍 받았으나. 그 개의 죽음은 비극적이었다.
어느날 아이들이 산책을 데리고 나갔다가 동네의 힘좋고 난폭한 큰 개에게 폐를 물려 낭자한 채 죽었다.
사랑하는 딸은 몇날 며칠을 울었다. 나는 그런 딸이 너무 아파하고, 슬피 울어서 나도 울었다.
지금의 망치는 너무 아파하고 있는 딸을 위해 데리고 왔다.그런데 이 망치라는 개는
어려서는 그렇게 예뻤는데 지금은 사납고 격렬하다.한 마디로 개판이다.
나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로도,어떤 광기로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없는한 어떤 식물도, 동물도, 사람도 이 삭막하고 막막한 사막을 건너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사랑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모든 것들에게 축복있으라.
오늘 아침은 평화롭다.
망치는 매 번 밥을 빼앗아 먹는 비둘기나 잡새들에게도 으르렁 대지않고,
사이좋게 먹고 있고,나도 편안하게 레이에의 트럼펫을 듣고 있다.이만하면 됐다.
얼마만의 느긋한 휴식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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