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이들이 존경을 받아온 것은 그들이 아주 간략한 기호로 광대한 정신세계를 표상할 수 있었던 데 (그렇게 믿어졌던 데) 기인한다. 반면 손으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물리적인 행위로 제한된 사물을 만드는데 그쳐 (그렇게 여겨져)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홀대를 받아왔다. 미술가나 시인이나 학자에 비해 천시돼 온 것은 그들이 손으로 작업하는 이요, 정신과 이치를 표상하는 일에 한계를 가진 사람들로 치부됐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사람이 남다른 지적, 예술적 능력으로 회화를 시에 버금가는 '리버럴 아츠'로 '격상'시키려 노력했지만, 그 역시 "조각은 손노동인 까닭에 회화와 병립할 수 없다"고 천명함으로써 나름의 한계를 노출했다. 레오나르도에게도 정신 우위의 사고는 여전했던 것이다.
정신과 물질을 대립적인 것으로 나누고 전자를 후자에 비해 우월한 것으로 보는 이런 이분법적 태도는 사실 엄청난 억압과 차별, 질곡의 원천이다. 인간은 정신과 물질로 이뤄져 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우월한 것으로, 다른 하나를 열등한 것으로 본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한쪽을 억압하고 부정하는 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이분법 안에는 성적 차별의 시선 또한 깊이 내재돼 있다는 사실이다. 남성은 이성적이며 여성은 물질적인 존재라는 시각이 그것이다. 이런 시각의 좀더 완화된 관념이, 남성은 이성적이며 여성은 감성적이라는 관념이다. 이런 시각의 좀더 완화된 관념이, 남성응 이성적이며 여성은 감성적이라는 관념이다. 히스테리가 일종의 정신신경증임에도 불구하고 자궁을 뜻하는 그리스어 'hystera'에서 나온 데서 알 수 있듯 '여성적인 것'으로 치부되면 그 기원은 무조건적으로 '물질적인 것'이 되고 만다. 여성이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이라는 관념은 그만큼 여성을 물질에 보다 가까운 존재로 묶어두려는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술의 장르가 남성의 영역으로 나뉘었던 것도 이런 성차별적 이분법과 관계가 깊다. 순수미술, 그러니까 회화나 조각 따위는 보다 정신적인 조형 활동으로서 남성의 영역이 돼왔고, 수예나 장식 등 공예미술은 보다 물질적인 조형활동으로서 여성의 영역이 돼 왔다. 물론 생물학적인 차이가 남녀 사이에 존재하고 이로 인한 생리학적인 차이, 나아가 심리학적인 차이도 남녀 사이에는 당연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차이와 차별은 전혀 다른 가치이다. 정신과 물질이 비대칭적으로 나뉘는 순간, 남성과 여성도 비대칭적으로 나뉘었다는 사실은 어쨌든 예술 안에서 지금도 극복되고 치유돼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정신과 물질을 하나로 잇는, 이 유구한 역사적 이분법을 진정으로 극복하는 예술이 여전히 기대되는 것은 그 이유에서이다.
정종미는 동양화가로서는 드물게 '정신의 붓'을 놓고 '물질의 채'를 택한 화가이다. 주지하듯 동양화의 대표적인 장르는 문인산수화이다. 문인산수화는 먹이라는 고도로 함축적인 재료를 통해 그리는 이의 인격, 나아가 우주의 정신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문자향(文字香)'이니 '서권기(書卷氣)'니 하는 말이 운위되는 것은 문인산수화가 갖는 이런 고귀한 정신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이 정신성의 담지자는 다름 아닌 양반 사대부, 곧 보수적인 가부장문화의 정점에 선 이들이었다. 학교 다닐 때 나름대로 필력도 있었고, "동양화 붓을 처음 잡았을 때 마치 전생에도 이런 그림을 그렸던 양" 익숙하게 느껴졌던 그로서는 이 문인산수의 붓을 놓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지금 이 시점의 선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수묵의 세계로부터 성큼 벗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정종미가 택한 길은 전통적인 염료를 장지에 바르며 무수하고도 꾸준한 재료의 실험을 통해 물질과 색이 자아내는 세계를 깊이 천착하는 것이었다. 그 고단한 과정은 매우 공예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통적 시각에 따르자면 그만큼 매우 여성적인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왕의 이분법을 그대로 수용하고 그 구분으로 '퇴각'해 안주하고자 히 길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하루에 10시간이 넘게 꾸준히 작업을 했다는 그의 말을 빌지 않덜도, 그는 자신의 화업에 전존재를 투자해 온 당찬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남성 중심 사회의 여성으로서, 또 테크놀러지 시대의 전통화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분명히 세우기 위해 주체적으로 나아가다 보니 오히려 소외되고 그늘져온 길로 들어섰던 것뿐이다. 이런 그의 태도는 결국 정신/물질, 남성/여성의 이분법을 '아래로부터' 극복하고 그 뜨거운 예술적 체험을 통해 정신과 물질이 합일되는 경지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이런 추구와 관련해 매우 시사적인 것은, 다양한 재료를 통해 물질의 세계를 천착하는 그의 예술이 무엇보다 물질 만능의 시대인 오늘 물질의 의미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재료를 다루는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진정 물질을 떠난 정신이란 존재하지 않겠구나, 정신이 담기지 않은 물질을 생산하는 것은 죄악이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물질이 나쁜 것이 아니다. 물질에 정신을 담지 않는 인간이, 바로 오늘날이 그런 시대라면, 그 시대가 나쁜 것이다. 물질 만능의 시대는 지난 세월 정신 우위의 시대를 구가해 온 인간에 대한 반격 혹은 보복일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보복에 불과한 것이다. 진정으로 추의 균형을 잡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이렇듯 끊임없이 재료에 대해 연구하고 찾고 실험하는 정종미의 노력이, 시류와는 어긋나 보임에도, 퇴행적이거나 고답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반갑고 고맙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치유 행위이며, 그런 점에서 그는 그 어떤 전위예술가 못지 않은, 앞서가는 예술가이다.
정종미의 일반적인 작업과정을 여기서 잠깐 들여다보자, 그의 작업은 종이를 염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소목에 물을 붓고 끓여 나온 액을 종이에 붓으로 발라 염색한다. 그 뒤 아교 바르는 일을 하는데, 아교는 물에 부어 냉장고에서 하룻밤 불린 후 70-80도씨 에서 용해해 사용한다. 이 교수(아교물)에 백반 용해 액을 넣어 종이에 바른다. 종이를 건조한 뒤 홍두깨에 말아 힘껏 두들긴다. 섬유질 사이의 빈 공간을 줄여 모세관 현상을 억제하기 위함이다 이제 물감을 만드는데, 천연 안료를 유리면 위에 올려놓고 아교 농액을 떨어뜨린 뒤 멀러라는 도구로 간다. 완전히 갈린 안료에 교수를 붓고 채색을 한다. 채색이 완료되면 콩즙을 바르는데, 콩즙은 콩을 여러날 충분히 불려 콩 속의 유지가 물과 친숙해졌을 때 믹서로 갈아 채로 걸러 만든다. 콩즙을 화면에 바르면 건조 뒤 다시는 물에 반응하지 않아 단단한 방수제가 된다. 이 위에 염색한 천 따위를 콜라주한다. 이때 접착제 역시 밀가루를 6개월에 걸쳐 삭혀 전분으로 만든 뒤 풀로 제작한다. 설명이야 간단하지만, 모두 지난한 과정이다. 이와 과련해 정종미는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한 바 있다.
"종이 위에 숨결을 담는 일, 인성을 부여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수없이 올리고 닦고 지우고 훔쳐내기. 그런 후에 다시 찢고 붙이고 뜯어내기, 그 과정에서 나의 의도를 멀찍이 벗어난 것들을 버리고 체념하고 용납하기.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무너질 듯한 어깨, 손가락 마디가 갈라지는 듯한 고된 노동 속에서 가끔 몰려오는 회의...."
이렇게 물질과 투쟁을 벌이며, 물질을 어르고 달래노라면 그는 자신과 재료가 하나가 되는 순간을 느낀다. 정신은 이렇게 물질을 되찾고 물질은 그렇게 정신을 품어 안는다. 우리 할머니들이 만든 조각보를 볼 때마다 그것이 버려진 천의 파편들로 이뤄진 아름다운 조형물임과 동시에 어떤 인고의 순간에도 관용과 멋을 잃지 않았던 그분들의 정신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정종미의 그림 역시 하나의 견고한 물질세계이자 유현한 정신세계로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그 합일된 세계는 이제 더 이상 정신/물질, 남성/여성의 이분법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과 관용의 저수지로서 다양한 감각적, 정신적 만족을 누리게 하다는 것이다. 옛날 사대부들이 추구했던 정신세계도 흥건히 느껴지고, 여인들의 한과 인내, 깊은 지혜도 충만히 느껴진다. 도깨비는 인간의 땀과 피 같은 것들이 묻은 빗자루, 부지깽이 같은 것이 변해서 된 것이라던가.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물질과 인간의 노동이 절실히 만나면 거기서 자연스레 정신이 움틈을 알았다. 정종미는 그렇게 우리 전통 재료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 그로부터 정신의 숨결을 되살렸다. 이렇게 만나는 정신이야말로 진정 의미 있는 정신이 아닐까. 그 정신을 만나기 위해 그는 오늘도 재료와 한몸으로 어우리지고 노동의 시간에 자신의 전존재를 바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