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보낸다.
동해안의 북쪽 끝까지 가는 길은 새로 뚫린 고속도로로 인해 어렵지 않게 도착한다.
동춘천 톨게이트에서 인제방향으로 달려, 진부령을 넘는 길은 여전히 쓸슬함이 남아있지만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넘어가던 그 겨울의 적막과는 다르다.그게 언제 였지.
겨울이 시작되던 무렵 이었던가, 한 겨울 이었던가.
다람쥐 새끼 움직임마저도 크게 들릴것 같던 푸르다 못해 시린 적막이었는데 나는 그런 길을 사랑했었다.
아마도 새벽, 고속도로를 주행중에 들리던 인적 뜸한 휴게소와 같은 종류의 것이리라.
진부령을 넘어 산자락의 끝을 조금 지나면 속초와 거진으로 나누어지는 이정표에서 7번 국도를 만난다.
7번 국도에서 다시 북쪽으로 이동을 하다 어느쯤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게되면 그 곳에 나만의
나만의 샹그릴라가 자리잡고 있다. 바닷가까지 10분이면 족하고 설악산의 끝자락이어서 산과 바다를 동시에
볼 수가 잇고 심지어는 작은 개울까지 있다. 마을의 앞 뜰에는 제법 넓은 들녘이 있어 아주 큰 정원을 갖게된다.
물론 공간적 위치가 샹그릴라의 정확한 의미는 아니겠지만 지리적인 요소도 중요하지.
논은 사계절 모두 아름답다. 봄,여름이면 녹색의 가지런함이며,가을이면 황금빛이고 황금빛의 들녁에 노을이 지면
이 우주의 아스라한 연출에 현기증이 나곤 한다. 추수 후에 논은 도 어떤가.
나는 이 곳에 힘겨운 노동을 섞고, 그 힘겨움마저도 즐겁게 휘파람을 불 것이다.
가끔은 집 앞에 나와 해바라기를 할 것이고, 밤이면 TV를 보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스르르 잠이드는 것,
그 것이 이제 꿈이다.이 정도면 마음의 집 한 채는 완성된다.
이제는 더 꿈을 꾸기에는 많은 세월이 흘렀고, 세상의 일들도 별 볼일 없다는 것을 알아차려 버려서
얼마남지 않은 이 꿈을 잘 가꾸어 나갈 예정이다.
아마도 너는 여전히 철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도 세상을 속속들히 알 만큼은 안다.
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데, 꿈을 꾸지 않고는 이 세상을 견딜 자신이 없었으므로 꿈을 꾸었으리라.
아마도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풀, 사람과 나무, 사람과 별등, 사람이 관계된 우주 사이 조차도
씨스템화 된 내용자체가 너무 거칠고 폭력적이어서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길은 폭력을 버리는 길 밖에 없다.
폭력의 모든 것은 소음이고 혼란이므로 버리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기도 하다.
아직 소음의 한 가운데 있기는 하나 조용히 응시를 할 수는 있다.
청년, 청년의 시절이 있었다.
푸르른 시절.
그러니까 지금은 푸르름의 때가 한참 지나가 버린 한 남자다.
그 남자가 가끔은 거울속에서 낯설때가 있다. 꿈을 꾸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남자가 면도를 하고 세수를 한다.
그것도 살아온 뿌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낯선 아파트에서. 가끔은 외롭다.
외로울 것도 없이 외롭다. 비행기 값이 비싸서 가끔이라도 오라는 말은 못하겠다.
온다해도 나는 바쁘게 움직이니 지난 여행처럼 상윤신부와 강선생처럼 일행이 있어야겠지.
가끔 편지라도 부쳐라. 세상 일은 쓰지말고 시시한,심심한 얘기들을 부쳐줘라.
잘 지내시고.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