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이름 부르는 일

ojhskhk0627 2006. 8. 23. 13:38
이름 부르는 일

                                                             박남준

  그 사람 얼굴을 떠올린다
  초저녁 분꽃 향내가 문을 열고 밀려온다
  그 사람 이름을 불러본다
  문 밖은 이내 적막강산
  가만히 불러보는 이름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뜨겁고 아플수가 있다니


마지막 구절  - 가만히 불러보는 이름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뜨겁고
아플수가 있다니-에서  마음이 저려옵니다.
나에게도 저런 절절한 사랑노래가 있었던가 .
연애시절 몇번의 싸움과 이별, 그리고 다시만남을 반복하다
결국 헤어진 끝에 그 밤은 너무나도 평안하게,분명히 평안하게
잘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눈물이 나왔습니다.이후2-3년간을
그 여자애가  잘 입었던 옷이며,머리스타일만 봐도 가슴이 덜컥내려앉고는
했었습니다. 그 여자애가 좋아했던 노래가 나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침잠하고는 했습니다. 결혼 후 두어번 다시 만날때 까지도 그 친구에 대한
감정이 추스러들지를  않아 마음고생을 했었지요.

누군가를 가슴에 들인다는 일은 상처를 예고하는 일이며
상처를 가슴에 키운다는 말과 같을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난  열흘 동안 내 가슴은 분노와 착잡합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을 잃은자의 고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땅의 인간에대한 예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병신되었고,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고,얼마나 많은 사람이 갇혔고,얼마나 많은사람이
상처가운데 살아가고 있는데, 제법 그것을 이해할만한 사람들이
저지른 폭력들을 보면서 허탈하고 착잡했습니다.

과연 저 사람들이 한 때 눈물을 같이 흘린자들이 맞는 것인지,
한 때 인간의 아픔을 위해 발버둥 쳤던  착하고,순한 인간들이었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자 했던 이 땅의 지난한 투쟁사가
결국에는 이러한 것인지 사람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봄 밤에 생각하는 대추리

그 싸움의 이름이 반미면 어떻고 맑스의 이름이면 어떻습니까.
결국은 늘 불안하고 고단한 일상에 대한 ,불안한 생존의 조건에 대한
물음과 답일 터인데 그것이 '불온한 사상'인들 무슨문제가  있다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통계와 수치,이론적 논거,더 나아가서는 사상, 이러한 낱말 역시
사람과 사람이사는 사람의 마을을 위한 이야기들입니다.

하인리히 뵐플린의 미술사의 기초개념을 보면
미술품을 보는 개인의"눈의상태"는 각 개인의 살아온 개인양식과
민족이 살아온 민족양식에 의해 그리고  시대양식에 의해
다르게 볼수 있다고 합니다.그러나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비껴가서는
그 작품이 존재성이 무의미해 집니다
각기 다른 눈으로 보는 폭력에 대해 적용한다면 이해는 할수 있습니다만
적어도 왜곡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대추리를 보는 방식도 여러가지 눈의 상태가 있을듯합니다.
허나 분명한 것은 비본질이 본질을 압도해서는 안되며
거짓이 참을 왜곡해서는 더욱더 안되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싸움은 늘 피를 부르는 미국의 폭력에 대한 반대이며
힘있는자들이 힘없는 사람들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한 반대입니다 .

대추리를 불러봅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묻습니다.
누구말대로 마흔중반에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는거냐고
이렇게 대답을 해봅니다
누군가에 의해 꺽여지는 쪽팔림은 당하지 말자
그것이 나에 대한 예의다.

대추리 그이름은  그들에 의해 깨질것입니다
힘없고 빽없는 그이름. 그들에 의해 뭉개질 것입니다.

이름을 불러보는 일
그것이 아프거나 슬프더라도 불러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을 담아서 불러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