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잎의 여자
오규원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의 한 잎같이 쬐그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안 가진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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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그야말로 한 때 좋아했던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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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여자는 없었을뿐더러
그런 남자도 없다는게 생활이다
환상에 불과할뿐
여자나 남자의 정신적 영역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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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젯 밤 오래된 시집을 꺼내어 글을 올리고,추억을 더듬어 보았는데
오늘은 오규원 시인께서 세상과 작별을 하셨다는군요.
시인으로서 언어의 명멸과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장 일상적인 女子가 女子스럽기는 하지만 결코 가장 女子다운 女子가 아니듯이,
가장 여편네다운 女子가 가장 아름다운 女子가 아니듯이,
詩 또한 詩다운 것이 가장 아름답고 생명 있는 그런 것은 아니다.
2.
개성이라든가 독창성이라든가 하는 말은 정신적인 모험이 쇠퇴할수록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3.
<정직하다>는 말이 자주 차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지적을 <당신은 평면적으로 사고하고 있다>는
惡談으로 읽을 줄 아는 시인은 드물다
4.
우리들이 사랑해야 할 것은 時代苦, 觀念 등에 시를 맞추는 논리적 추적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무너뜨리는 정신의 個別性이다.
5.
관념의 공허한 울림만큼 피곤하게 하는 것이 없고,
지식인의 제스처만큼 슬프게 하는 것이 없다.
규격화되고 보편화된 이 시대의 過重에서 빛나는, 공허한 관념놀이의 지긋지긋함.
- 오규원. 王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뒤표지의 글
문학과지성 시인선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