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여인숙에서 보낸 한 철

ojhskhk0627 2007. 4. 11. 11:33

 

 

    여인숙에서 보낸 한 철

 

 

 

                                      김경주

 

 

 

 

한 밤중 맨발로 복도를 걸어가
공동화장실에서 몰래 팬티를 빤다
방으로 돌아와
발가락을 뻗어 스위치를 끄고 누우면
외롭다 미라처럼
창틈의 날벌레들은 입을 벌린 채 잠들고
어제는 터진 베개 솜 같은 눈들이
방안까지 뿌려졌다
내가 마지막이 아니라서
이 이불은 또 펼쳐질 것이지만
피부병처럼 피어있는 이불위의 꽃잎들,
밤마다 문틈으로 흘러온
옆방 기침소리처럼 피가 묻어 있는 것은
        

방안 곳곳 낙서처럼 살다간
사람들 머리카락 몇 줄,
손끝에서 가루로 부서진다
때 절은 하모니카를 속이불로 밤새 닦거나
철지난 주간지 위에 뜬 발톱을 깎아 놓는 일,
배를 잡고 화장실 순서를 기다리며
눈이 튼 사람들과 비린 아침을 주고받는 일은
아름다웠다 저마다의 독채에선
아침마다 작약냄새 환하게 피어올랐다

언제쯤 내 몸을 거절하지 않는 위증이
희망이 아닐 수 있을까
이불속에 들어가 라디오를 끌어안으며
사람들은 산다 허구처럼,
몇 줄의 최전방을 수첩 속에 갈겨 놓은 채

아침이면
나는 촛농처럼 조용히 바닥에 흘러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