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 옵니다.
슬픔이 밀려온다 말하면서도 통증에 끅끅 잠시 휘청입니다
당신,
방안에서 머리를 틀어 올리고 쌀을 씻으며 오고 간
생활이라는 이름은 발 뒷굼치에 더께처럼 내려앉아
문으로 들어온 햇빛을 따라 날아가고 싶었을지도
당신은 침대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정사를 나눈 후에도 고개를 숙이고
이어 창밖의 먼 곳을 응시했습니다
그 한숨을 바라보니 나 역시 한숨이 나옵니다
햇볕에 따라, 시간에 따라 이동하던 의자는 어디로 갔나요
그 의자에 앉아 당신은 졸기도 하고 꿈을 꾸기도 하였지요
검푸른 해풍에 실려온 저 너머에는 당신의 세상이 있을까요
당신,
거실과 화장실을 오가며 면도를 하고 술이 과한 날엔 풀썩 쓰러지거나
일요일엔 정신을 놓고 쳐자기도 하고
라면을 끓이고 시들어 버린 김치와 밥을 말아 먹고
토카타푸가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의자에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는,
떠날 수 없음을 서성이는 날들
당신의 빈 방
텅 빈 방의 당신
당신을 바라보는 날은 몸이 묶여있거나 마음이 묶여있거나 둘중의 하나이거나 둘 다 일때도 있습니다. 갇혀있음의 끝에 포악하게 자리잡은 배후를 알기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날입니다.
11월 첫째주에 예술의 전당에서 이네사 갈란테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제가 아는 곡은 많지는 않았지만 종종 귀에 익은 노래를 들으면서 노래보다는 노래를 통해 보여준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는 알것도 같았습니다. 낮은 음에서는 절규하듯, 높은 음에서는 당당하게,거침없이 감정을 조율하여 부른 음의 세계는 끊길듯 하다가도 다시 살아나고 살아내는가 하면 다시 잔잔해지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잘 표현한 공연이었죠. 자기앞에 주어진 생의 상처와 슬픔, 기쁨과 절망을 스스로의 탤런트를 통해 보여주는 일은 그만한 생을 이해하고 있다거나 적어도 겪고 있는 중임을 알게 합니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나에게는 어떤 음율이 있으며 그것에는 어떤 것들이 깃들여 있나 생각을 하여 봅니다. 물론 클래식이라는 틀을 가진 정형성에 대해 불만이 많기도 하고, 어떤 적당한 거리의 건널수 없는 강 같기도 하고, 우리말로 전달되지 않는 의미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없지는 않아서 음! 역시 심수봉이 최고야 하고는 했지만요. 이발소에 흘러나오는 심수봉과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사이에는 어떤 간극도 없습니다 단지 취향의 차이일 뿐 그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다만 감정의 뼈를 만져주는 언어의 집이나 생각의 마당이 간장이나 김치처럼 뼈에 녹아들은 까닭에 '사랑밖에 난 몰라'가 더 사무치는 음이 되는 것이겠죠.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나는 유치함이 좋아집니다. 세련된 언어보다 둔탁한 한마디 말이 좋고 땟갈좋은 사진보다는 멋대가리 없는 진실의 뭉툭함이 좋아집니다. 주요한 것은 삶의 진실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와 있습니다.
스스로가 갖고 있는 생의 진실 앞에는 유치함도 섬세함도 그다지 중요한 요소는 아닐듯 합니다.
몸으로 삶을 체득한 자들은 태도가 명확합니다. 미친듯이 혹은 죽도록 살아낸 자들은 나름대로 이른바 개똥철학을 할지라도 일가를 이룹니다. 그것은 매우 다양해서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닌것 같습니다.옳고 그름을 떠나 그것을 근사하게 표현하지 못할 뿐 철학은 철학입니다.유치도 졸렬도 섬세함도 성숙함도 각기 다른 이름일 뿐이고 약간의 다른 차이일뿐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중의 하나일 뿐입니다.그런 감정들이 만들어 낸 노래는 은유적이기도 하고,직설적이어서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가슴을 다독이는 감동이기에 충분합니다.
그 속에서 서로 조화롭게 수다를 떨 충분한 성숙함이 우리에겐 있다고 생각을 또 하여 봅니다. 각자의 사고가 입력된 책들속에서 책들의 논리적 귀결이나, 모든 선지자들, 생의 선생들의 가고자 했던 유언장을 들여다 보며 이해가 가는 까닭은 그들을 이해할만한 성숙함이 각 자의 삶에서 충분히 볼 수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체념에서 시작해서 길위에서 만났던 애통함과 상처를 안다는 것. 다양한 생의 길을 보았고 이해한다는 것 . 서로의 관계속에서 저질러진 운명을 이해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인간적인 성숙으로도 채울 수 없는 쓸쓸함과 외로움이 있어 우리는 허해지기도 하고 떠돌기도 할 것입니다.도저히 이따위 세상을 인정할 수 없었으므로 다른 세상을 꿈꾸었으리라 생각을 합니다.각기 갖은 모습대로, 각자가 겪은 생의 얼굴을 비죽삐죽 내어 놓으면서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저는 제 유치함이 싫지는 않습니다.여지껏 살아왔던 결과물이 지금의 제 모습이기도 하거니와 이 결과물에서 조금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되지 않습니다.그러니 사랑하도록 해야겠지요.차이를 인정하는 것. 날카로운 이빨들은 모두 하나씩 갖고 있어서 으르렁 거릴수 있으나 타인을 헤아리는 섬세함이 더욱 중요하겠지요. 삶의 결이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몸속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다 다른대로 이야기하면 될 것입니다.세상은 지옥이 아닌 다같이 만들어
가는 다정한 공동체로 거듭 날 수는 없을까요. 그림을 볼 때마다 쓸쓸한 바람이 불곤 해서 마음둘데가 없습니다.
당신의 그림속에는 큰 통창과 창문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곳에 갇혀 떠날수 없는 영혼들이 갇혀있는 채로 먼 곳을 응시하고는 합니다.문을 열고 간단없이 걸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갇혀있는 공간이 먼 여행끝에 다시 돌아올 수있는 집이었으면 좋겠습니다.그곳에서 밥을 지어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포근한 잠이 되는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생이 누군가에 의해서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내 삶을 열어가는 힘이되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당신의 텅 빈 방을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