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통하여

서로주체성의 이념-김상봉

ojhskhk0627 2008. 4. 24. 21:35

 

머리말

 

 

 

자유란 소박하게 말하자면 남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이요,자기가 자기의 주인이 되는 것이지만

이것은 고립된 자기관계 속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세계 속에서 동료 인간들과 더불어 사회와 세계의 부분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모든 부분은 전체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을 수 없으니 만약 전체사회와 세계가 나로부터 소외된 타자적 힘과 권력으로서 나에게 대립한다면, 나는 결국 그 전체에 의해 규정되는 노예상태를 벗어날 수가 없다.

 

자유인으로 살기위해서는 단순히 압제에 저항하는 용기뿐만 아니라, 자기의 세계를 스스로 형성할 수 있는 생각의 힘이 요구된다.세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계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인을서 세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사물의 주어져 있음을 넘어서 모든 될 수 있음과 역사에 이르기까지 있음의 모든 치원들을 자기속에 포괄하는 참된 총체성으로서의 세계를 파악하고

그려낼 수 있어야한다.

 

이나라에서 철학이란-적어도 주류 강단철학을 놓고 보자면-너무나 오랫동안 남의 철학을 학습하거나 해설하고 고작해야 그에 토를 다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앵무새가 되는 것, 자유인이 아니라 정신의 노예가 되는 것이 철학의 길이었던 것이다.기꺼이 남의 철학을 배우려는 겸손은 얼마나 고귀한 정신의 미덕인가? 하지만 만남과 배윰이 자기의 정립이 아니라 일면적인 자기상실을 낳을 뿐이라면, 그런 배움은

또 얼마나 비극적인 정신의 타락이겠는가? 그런데 이땅에서 철학을 직업으로 삼은 자들이 보여준 철학은

그렇게 타락한 정신의 유희였다. 타락이란 말은 은유가 아니다.자기를 스스로 버린 정신은 단지 추상적의미에서 정신의 본래성을 저버리는 데 그치지않고 현실속에서 추한 흔적을 남기게 된다.

 

철학이 고통받는 민중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그들의 투쟁과 꿈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그려내지 못하고

선택받은 엘리트 상류계급의 눈으로 세상을 볼 때, 그것은 어김없이 지배계급의 허위의식으로 전락하게 된다.미신으로 타락한 종교적 열정이 눈먼 광기가 되듯이, 허위의식으로 전락한 철학은 그 진지함때문에

더욱 우스꽝스럽고 혐오스러운 괴물이 되어버린다.오직 씨알들 사이에서 더불어 고통받고 더불어 저항하며 더불어 형성하는 철학만이 우리를 해방하고 자유롭게 하는 참된 철학인 것이다.

 

우리의 궁극적지향은 우리의 역사에 뿌리박은 철학의 형성이다. 여기서 철학은 자기인식인 동시에

자기에게 주어지고 자기가 형성하려는 하나의 세계 이념이니, 철학자에게는 자기인식과 세계인식이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자기속에서 세계를 만나고 세계속에서 자기를 만난는 것, 그것이 철학의 이린 것이다.그렇게 자기가 문제라는 점에서 철학은 화가가 물감으로 자화상을 그리는 일과 비슷하다.

 

주체성이란 자기가 누구인가에 대한 반성적 자기인식 속에서 표현되고 또 실현된다.

하지만 타자속에서 자기를 상실하고 자기와 치명적인 단절 속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우리 현대사의 모든 질곡은 정신사적으로 보자면 그런 자기상실의 필연적 결과이다.그렇다면 어떻게 자기상실에서 벗어나 자기의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가?

이것이 그 책에서 우리가 제기한 근본물음이었다.

 

타자의 노예가 되지않고 자기의 주인이 된다는 점에서 비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이상인 서양적 자유의 이념속에 타자적주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홀로주체성에의 경향성이 본질적으로 가로 놓여져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협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자유의 이념을 홀로주체성의 위험에서 건져내는 것이 한가지 과제였다면,우리 한국인이 경험한 타자에 의한 자기 상실과 자기분열의 역사로부터 타자와의 만남의 가능성을 읽어내고 서양정신이 가르쳐주지않은 우리 나름의 주체성을 정립하는 것이 그 책에서 우리가 제기한 또 다른 과제였던 것이다.

 

자기로부터 타자에게로 나아가고 다른 한편에서는 타자로부터 자기에게로 나아가는 길을 닦는 일,곧 자기와 타자의 참된 만남을 위한 길을 열어가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타자와의 만남을 위해 자기의 주체성을 희생해야 한다면, 그런 만남은 홀로주체성과 마찬가지로 온전한 삶의 이상이 되기는 어렵다.오직 만남 속에서 우리가 참된 주체성을 실현할 수 있을 때,

만남은 홀로주체성과 타자속에서 자기상실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같이 치유하고 극복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만남속에서 생성되는 주체성을 가리켜 우리는 서로주체성이라 불러 왔다.

 

서양적 자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보이며,더 나아가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를 같이 생각해보려는 것이 이 책에서 우리가 수행하려는 과제이다.

 

서양에서 철학은 근거에 대한 물음과 함께 시작되었다.하지만 근거가 사물적인 존재의 바탕일 때 우리는

그 근거에 대해 감사를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존재가 만남속에서 빌서 열리는 한에서, 참된 의미에서

철학이 돌이켜 생각해야 할 근거는 우리가 만남속에서 지고 있는 빚이다. 내가 여기 자유로운 존재의 빛 가운데 서 있을 때,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희생에 빚지고 있는가. 철학이 근거를 사유한다는 것은 그 빚을 회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그 회상은 역사적인 것인 동시에 철학적인 것이기도 하다.

 

 

 

-----------------------------------------------------------------

김상봉 교수는 서양 철학을 홀로주체성으로 가름하며 서로주체성으로 환치되기를 바란다.

서로주체성이란 개인의 자유을 포함한 홀로주체성과 민중의 항쟁의 역사속에서 근거를 찾아가는

물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머리말은 책의 11페지에서 24페이지 까지로 길다. 여기에서는 중간중간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발췌해서 올려 본다.

 

 

'시선을 통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님은 먼곳에  (0) 2008.08.14
나는 그냥 나 자신이면 됩니다  (0) 2008.08.01
사진작가 이시우의 모두진슬  (0) 2008.01.18
사진작가 이시우의 최후진술  (0) 2008.01.18
오늘...... 자전거를 샀다  (0) 2008.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