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통하여

하루끼에 관하여

ojhskhk0627 2007. 9. 16. 13:40

 

 

저자의 후기를 보니 글쓰기는 1986년 12월에 시작해서 1987년 3월에 끝이 났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초판인쇄가 1989년 6월으로 시작해서 초판24쇄, 2000년8월 2판이 85쇄

2004년의 3판이 27쇄로 적혀져 있다. 그리고 지금이 2007년 9월이니 책의 분량은 더 늘어나 있을 것이다.

근 20여년 동안 하루끼는 막말로 열나게 읽힌 셈이다. 서점에 가서 보니 그의 코너가 따로 있었고

그렇게 많은 다작의 책이 있었는지도 처음 알았다.그의 다른 책까지 합하면 엄청난 하루끼신드롬인 셈이다.책을 조금 가까이 한 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그를 읽었을 것이겠지만,그에 대한 평가는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 시기에 나는 그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하여 있던 관계로,그를 접할 수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 하루끼신드롬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그 시기에 나는 신음속에서 지루한 노동을 힘겹게

진행하고 있었으며,이윽고 불어닥친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인한 혹독한 '상실의 시대'를 그와는 다르게

겪어내고 있었던 셈이다.간간히 단편소설류의 책과 인문서적을 접하긴 했으나, 기억으로는 2004년 말까지는 책을 손에 잡는 일이 거의 드물었다고 해야할 것이다.그러니 하루끼가 '하루의 식사끼니라'불렀어도 눈치채지 못했을 뿐더러, 별반 다른 감흥은 갖고 있지 못했으리라.

 

서점에서의 그의 책을 고른 이유는 내가 알고 있는 지인들이 그의 책을 읽었고 평가가 나쁘지 않았던

느낌이었으므로 그들의 선구안을 믿기로 했던 이유었는데, 사 놓고도 어제 저녁부터 시작해서 오늘에서야겨우 두권을 읽었을 뿐이다.' 어둠의 저편'은 책가게 교보문고에서 골랐고 '상실의 시대'는 어제 아이들 만화책 빌리러 간 동행을 이유로 골랐다. 책 표지에 대해 말 좀 해야겠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문학사상사에만 그의 책을 펴내고 있었는데,아마도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국내의 판권을 그 쪽에서 전담하기로 했거니 하고 있다. 조잡함이라니.

아무리 책표지에 마켓팅적 요소가 전면적으로 들어나야 한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공포시리물이나,

탐정류의 책표지에서 느끼는 시리즈물 같았다.그것은 책의 내용이 주는 어떤 것과도 어울리지 않는

답답함이었다.음! 별참견을(설마 짤리지는 않겠지)

 

첫 권은 '상실의시대'를 골랐다.다 읽고 난 후의 느낌.

첫번째 내가 너무 늦게 때를 놓쳐 책을 읽었거나,(때를 놓쳤다는 것은 나이가 주는 메마름일 것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나이가 먹었다는 것은 통계적인 경험을 가지고 상황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으며,몰염치와 몰이해의 직관으로 밀어부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두번째 보수적 글읽기(상실의 시대는 장마다 대화체가 너무 많아 행간의 독자의사유를 방해하고 가볍게하는데 반해 한국의 소설들은 그걸 무어라고하지, 인물묘사와 상황묘사또는 배경묘사 성격묘사등 서사적, 서정적 문어체가 전체를 리드하고 묵직한 느낌을 같는데)에 익숙해져 있는 연유에 있거나,아니면 이미 고등학교때 신물나게 보았던 박범신,한수산류의 소설에서 별반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소설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이 주는 즐거움에 하나는

작가가 갖고 있는 사고의 영역을 탐사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예컨대 행간에 주어지는 사유의

방식을 직설적으로 차단하는 하루끼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한국의 소설가들의 차이는 여백에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으며 그것에 대한 재해석은 독자들에 의해 완성된다는, 독특한 여백이 존재한다.소설에 있어서의 대화체는 최소한의 접근을 통해  이해의 도를 이끌어야 한다는게

내 글읽기의 방식이라면 방식이다.어쨌든 기술적 접근방식이 기차여행이나,휴가지에서나 가볍게 읽고

언제 읽었는지도 모르게 잊어버리는 정도의 책이었던 것 같다.인문학적 상상력이라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말초적 신경선 건드리기에 다름아닌 이 책이 그토록 많이 팔린 이유를 감지하지 못하겠다.

가벼워진 사회의 어떤 트렌드적 수용이었을까. 아무래도 몇 권을 더 읽어봐야겠지만 상실의 시대와

어둠의 저편이 주었던 책읽기는 실패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514페이지로 묶여질 만큼 그만한 내용을

지니기에는 함량미달의 지루한 연애소설이었는데 ,이것마저도 바라보는 방식의 한 취향에 불과할것이다. 그것은 읽고 느끼는 사람마다 다가오는 느낌은 절대적 지지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으니 말이다.

 

일본쪽의 책읽기는 소설에서 나쓰메 쏘세키나 다자이 오사무, 야스나리정도가 정도였고 얼마전소설이 아닌 '일본정신의기원''탐구'의 가라타니 고진이 전부인 한계에서 그들을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그들의 서점에서 부러웠던것은 풍부하고 세세한,책들이 서점에 즐비하다는것이

부러웠었다.

 신주쿠 호텔에서 바라본 도청이라든가 시청이라든가.

시부야 아니면 신주쿠.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거기가 거기같고.저녁이 되자 엄청난 인파가 쏟아져 나와 피해서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었었다.그러나 당황하지 않는다.어느나라를 가든 폴리스를

찾아라.그러면 편안하게 호텔까지 모셔다 준다. 실험해 보시라. 이 많은 사람중에 나오코도 와타나베도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서로는 특별한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하라주쿠역이었든가 아마도 그쪽 어디쯤에 있었을 것이다

 전형적인 니뽄스타일

모르기해도 나오코 스타일은 아닌것 같다

 

아마도 와타나베와 나오코,미도리가 한번쯤은 걸었을 그들의 거리

그들은 이 도시에서 사랑과 좌절 ,희망을 꿈꾸었을 것이다.그리고 죽음도 함께 있었겠지

사람사는데는 어디나 비슷하다. 

 

일본의 도쿄는 이미 그들이 말한대로 아시아가 아니었다.

어디가나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었다.그들의 생활씨스템도 넘거나 모자라는 법이 드물었다.

나는 그게 지겨웠다.

 

신주쿠.하라주쿠.시부야도 그들이 그토록 힘겨운 나날들을 보냈으리라는 짐작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모데산토의 거리

 음식점의 진열장. 아기자기하다. 그들은 섬세하다.그 섬세함의 뒤에도 뒤통수를 치는

인간들이 많으니 환상은 갖지 마시라.

 

친절하고 깔끔했던 조그만 음식점,우리의 분식집 정도

그러나 반찬이 정말 조금 나왔다. 그래서 열받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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