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똘레랑스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습니다.
유색인종의 폭동(?)도 그들만의 똘레랑스에
기인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에펠탑 맞은편의 세느강도 찬사를 받기에는 좀 깊은개울물에
지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좌우로는 흐르는 것 같은데
방향감각을 잃어서리....
택시를 내린 곳이 물랭루즈앞이었는데 몽마르뜨르언덕의
시작이 됩니다. 올라가는 길 동안 알베르토 까뮈와
프란츠 파농을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내내 알베르토 까뮈의 시지프스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관계로 동시대를 살았던 같은 알제리 출신의 파농을 알지
못했었으나 검은피부 흰가면을 통해 후자의 묵묵함에 더 많은
별표를 주었던 기억을 합니다. 그들의 후예들은 아직도
청소부와 캐셔와 허드렛일등으로 파리에 존재하고 하고
있었습니다
몽마르뜨르에 오르자 한 여인이 옛날 축음기 모양의 핸들을
돌리면서 에띠뜨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를 부르고 있었는데
삐아프보다 훨씬 현실감 있게 들렸습니다
거리의 화가들을 보았습니다
허가를 받은 자만이 거기에서 영업을 할 수 있는데
그림들은 대개 풍경화였고 조악한 그림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내 눈은 누드화에 꽂혔는데 화가의 이름을 물어보니
피카소와 달리라는 농으로 대답했습니다
이방인의 눈에보인 파리는 화려한 빛의 도시입니다
그 화려함을 즐길줄 모르는 내 눈과 못난 마음을 탓하기보다는
즐기기에는 화려함 밑에 가려진 거친 아픔들이 더 많이
보이는 걸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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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아닌 편지를 썼었다
엽서에 부치려고 메모해 놓았다가는,
사진은 다른 사진이었지만.
10시간 이상을 땅을 딪지 못한다는 것은 괴롭고 괴로운 일이다.
그리고 변기에 대고 눌러 가면서 담배를 피웠었다. 그 이후
비행기로 3시간 이상가는 출장은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빼고는 도망을 다녀야 한다.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제일 마지막 사진 에펠탑 바로 밑이다.
에펠탑은 내가 본 최악의 철 구조물 이었다